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파양호 대전 (문단 편집) === 진우량과의 대립 === || [[파일:external/oi63.tinypic.com/nd3huv.gif]][br]'''원말군웅도''' || 진우량은 본래 [[어부]]의 자식으로, 당대 군웅 중 한 명이었던 [[홍건적]] 출신 서수휘(徐壽輝)의 군단에서 예문준(倪文俊)이라는 인물의 수하로 있었다.[* [[홍건적]]은 봉기 후에 군대를 크게 둘로 나눠 북벌을 시작했는데 그 중 서계홍건군(西系紅巾軍)을 이끌던 자가 서수휘였다. 동계홍건군은 유복통, 한림아가 이끌었으며 이후 주원장에 흡수된다. 동계홍건군에 남은 자들은 요동을 넘어 [[고려]]를 침략한다.] 서수휘는 천완(天完)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으나 원나라에게 패배하여 세력이 약화되었고, 다시 세력을 일구었지만 이번에는 승상인 예문준에게 좌지우지되는 신세가 되었다. 그때, 진우량은 기회를 보아 예문준을 참살하고 스스로 선위사(宣慰使)라고 일컫으며 그 세력을 손아귀에 넣고, 서수휘의 세력 역시 실질적으로 장악하였다. 진우량은 안경(安慶), 용흥(龍興), 서주(瑞州), 소무(邵武), 길안(吉安), 무주(撫州), 건창(建昌), 공(贛), 장(汀), 신(信), 구(衢)를 모두 격파하고 손에 넣어 일약 장강 이남 최대의 세력이 되었다. 진우량과 주원장은 태평을 경계로 세력을 마주하였다. 선공을 먼저 취한 것은 주원장이었다. 주원장은 먼저 상우춘을 보내, 진우량이 함락시킨 원나라 영토인 지주(池州)를 공략하게 함으로써 선공을 취하였다. 1360년 5월, 진우량은 조보승(趙普勝)[* 본래 서수휘에게 귀부하였다가 진우량을 위해 싸우고 있었는데, 주원장의 이간계가 성공을 거두어 진우량과 적대하였다.]을 격파하고 그 세력을 병합한 후 지주를 공략하려 했지만, 명나라의 에이스라고 할 수 있는 서달은 진우량을 패퇴시켰다. 그러나 곧 진우량 역시 반격에 나섰다. 진우량은 태평을 함락하고, 수비장이었던 주문손(朱文遜), 원판(院判) 화운(花雲), 왕정(王鼎), 지부 허원(許瑗)을 모조리 살해하였다. 곧 명목상의 군주였던 서수휘까지 참살하고 명실상부한 강남 최강자가 된 진우량은 광서와 호광을 손아귀에 넣고 국호를 한(漢)이라고 정하여 강력한 기세를 뽐내었다. 황제가 된 진우량은 이제 장사성에게 동맹을 제의했고, 주원장의 세력인 응천부(應天府)[* 남경]를 함락시키자고 권했다. 당연히 응천부에서는 엄청난 난리가 벌어졌고, 주원장은 이제 최대의 위기에 처하고 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